소설 번역 대참사: 사라진 주어를 찾아라 – 아마존 출판 번역 팁

한국 사람끼리 말할 때는 주어, 잘 안 씁니다.

“밥 먹었어?”

“응, 먹었어.”

누가 먹었는지 굳이 말 안 해도 다 아니까요. 문맥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까. 우린 이게 편합니다. 자연스럽고요.

그런데 이 편한 습관이 소설 번역으로 넘어가면 대재앙의 씨앗이 됩니다.

영어는 주어에 강박이 있는 언어입니다. 누가 그 행동을 했는지, 누가 그 감정을 느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문장이 성립이 안 되거나, 아주 이상한 문장이 되어버립니다.

한국어 원문엔 없는 주어를 번역가가 문맥을 보고 ‘추리’해서 채워 넣어야 한다는 얘기죠.

여기서부터 오역의 대참사가 시작됩니다.

실제 사례 하나 볼까요. 로맨스 소설의 한 장면입니다. 남녀 주인공이 심각하게 다투고 헤어진 직후입니다.

(원문)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국 독자는 압니다. 침대에 쓰러진 것도, 우는 것도, 억울한 것도 다 ‘주인공(나)’이라는 걸요.

그런데 이걸 주어 없이 영어로 옮기면?

(직역 대참사)

Came back home and collapsed on the bed. Tears poured out suddenly. Was so unfair, couldn’t stand it.

원어민이 보면 고개를 갸웃합니다. “누가?”라는 질문이 바로 튀어나오죠. 주어 없는 동사들이 공중에 붕 떠다니는 느낌을 받습니다.

더 심각한 건 대화 장면입니다. 주어가 빠지면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옵니다.

(원문 – A와 B의 대화)

“그걸 정말 몰랐어?”

“알았으면 가만있었겠어?”

“진짜 실망이다.”

자, 마지막 문장 “진짜 실망이다.”

이건 누가 누구에게 실망했다는 걸까요?

  1. A가 B에게 실망했다. (I am disappointed in you.)
  2. B가 A의 반응에 실망했다. (I’m disappointed [by your reaction].)
  3. 혹은 B가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다. (I’m disappointed in myself.)

한국어로는 앞뒤 맥락 보면 대충 감이 옵니다. 하지만 영어는 ‘I’, ‘You’, ‘He/She’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번역가가 순간적으로 맥락을 잘못 짚으면, 소설의 감정선이 완전히 꼬여버립니다. A가 화내는 장면이 B가 자책하는 장면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거죠.

해외 출판을 염두에 둔 작가님이라면, 원고를 볼 때 이 부분을 꼭 체크해야 합니다.

내가 쓴 문장에 주어가 없어도 명확한가?

한국어로는 명확해 보여도, ‘이걸 영어로 바꾸는 사람은 헷갈릴 수 있겠다’ 싶은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감정 묘사나 복잡한 대화가 오갈 때요.

그럴 땐 괄호 치고 메모라도 남겨주세요. (주어: 여주인공) 이렇게요.

친절한 한국어는 아닐지 몰라도, 정확한 번역을 위한 필수 가이드가 됩니다. 영어 독자들을 ‘누가 한 거야?’라는 추리 게임에 빠뜨리지 않으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