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쓰는 법, 처음이라면 여기서부터
에세이를 쓰고 싶습니다. 막연하게. 내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됐는데, 막상 노트북을 열면 커서만 깜빡입니다. 첫 문장이 안 나옵니다. 뭘 써야 할지는 아는 것 같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그 상태에서 시작하는 분을 위해 썼습니다. 에세이가 뭔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실제로 어떤 순서로 쓰면 되는지. 가능하면 군더더기 없이.
에세이란 — 뜻, 그리고 수필과의 차이
에세이(essay)의 어원은 프랑스어 essai입니다. ‘시도’라는 뜻입니다.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자기 생각을 이리저리 시험해보는 글을 모아 《Essais》라는 책을 냈습니다. 1580년의 일입니다. 그게 에세이라는 장르의 시작이었습니다.
몽테뉴는 자신의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의 재료는 나 자신이다.” 논문처럼 결론을 증명하려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자기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해 들여다보는 글. 뭔가를 주장하기보다는,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글. 그게 에세이의 원래 성격입니다.
그러면 수필은? 한국에서 수필과 에세이는 거의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수필(隨筆)은 ‘붓 가는 대로’라는 뜻이니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글이라는 점에서 에세이와 닮았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수필은 한국 문학 전통 안의 이름이고, 에세이는 서양에서 온 이름입니다. 쓰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자기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글.
칼럼은 의견을 전달하는 글입니다. 일기는 자기만 보는 글이고요. 에세이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자기 이야기인데, 읽는 사람을 의식합니다. 사적이지만, 보편적인 무언가에 닿으려고 합니다. 그 긴장감이 에세이를 에세이답게 만듭니다.
에세이의 형식과 구조
에세이에 정해진 양식 같은 건 없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서론-본론-결론 구조는 잊어도 됩니다. 문학 에세이는 논증이 아니라 경험이니까요.
그런데 형식이 없다는 게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좋은 에세이에는 보이지 않는 뼈대가 있습니다. 대체로 이런 흐름입니다.
장면으로 들어갑니다. 구체적인 순간, 특정한 장소, 어떤 감각. 독자를 잡아끄는 건 주장이 아니라 장면입니다. “작년 여름 포항의 어느 횟집에서”가 “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보다 훨씬 강합니다.
생각이 움직입니다. 그 장면에서 출발해서 어딘가로 갑니다. 기억이 다른 기억을 부르고, 감각이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이 움직임이 에세이의 본문입니다. 직선일 필요 없습니다. 돌아가도 됩니다. 다만 아무 데나 가면 안 됩니다.
어딘가에 도착합니다. 결론이 아니라 도착입니다. 글을 쓰기 전의 나와 글을 쓴 후의 내가 미세하게라도 달라져 있어야 합니다. 독자도 그걸 느낍니다. 그 변화가 에세이의 마지막 문장을 만듭니다.
에세이 한 편의 분량은 보통 원고지 10~20매(2,000~4,000자) 정도입니다. 너무 짧으면 깊이가 안 나오고, 너무 길면 산만해집니다. 물론 이건 참고치입니다. 글이 필요한 만큼만 길면 됩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조지 오웰은 “잘라낼 수 있는 단어는 반드시 잘라내라”고 했습니다. 에세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에세이 쓰는 법 — 네 단계
1. 주제를 잡으십시오
에세이 주제는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작을수록 좋습니다. ‘사랑’은 너무 큽니다. ‘헤어진 연인이 쓰던 샴푸 냄새를 마트에서 맡았을 때’는 쓸 수 있습니다.
좋은 주제의 조건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걸려야 합니다. 왜 걸리는지 자기도 정확히 모르면 더 좋습니다. 에세이를 쓰는 이유가 그걸 알아내는 과정이 되니까요.
미국의 작가 조안 디디온은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에세이스트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려고 글을 쓴다.” 에세이의 주제는 ‘내가 이미 아는 것’이 아니라 ‘아직 잘 모르는데 자꾸 돌아보게 되는 것’에서 나옵니다.
몇 가지 방향을 던져보겠습니다.
-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기억 하나
- 설명하기 어려운 습관이나 취향
- 관계 안에서 내가 보인 이상한 반응
- 어떤 장소에 갈 때마다 드는 특정한 감정
- 남들은 별것 아니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큰 일
2. 제목을 잡으십시오 (또는 나중에 잡으십시오)
제목은 처음에 정해도 되고, 다 쓴 다음에 붙여도 됩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다만 한 가지. 에세이 제목은 내용을 요약하는 게 아닙니다. 궁금증을 만드는 겁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보다 “어머니의 냉장고”가 낫습니다. “이별의 슬픔”보다 “돌려주지 못한 우산”이 낫습니다. 구체적인 사물이나 장면이 제목에 들어가면 독자의 머릿속에 그림이 생깁니다. 그 그림이 글로 끌어당기는 힘이 됩니다.
에세이집 제목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에세이집은 수록된 에세이 중 하나의 제목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 전체의 분위기를 대표할 수 있는 한 편. 그게 보통 표제작이 됩니다.
3. 초고를 쓰십시오
초고는 망해도 됩니다. 진짜로. 미국 작가 앤 라모트는 소설과 에세이를 쓰면서 글쓰기 자체에 대한 책도 낸 사람입니다. 그는 《Bird by Bird》에서 이걸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모든 좋은 글은 형편없는 초고에서 시작한다고.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쓰는 작가는 없다고.
초고를 쓸 때 기억할 것 몇 가지입니다.
장면부터 시작하십시오. 첫 문장에 관념을 넣지 마십시오. “인생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면 독자는 떠납니다. 구체적인 순간으로 들어가십시오. 어디에 있었는지, 뭘 보고 있었는지,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 감각이 먼저, 생각은 나중입니다.
‘나’의 거리를 조절하십시오. 에세이는 ‘나’의 글이지만, ‘나’에 너무 가까이 붙으면 일기가 됩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 거리감이 에세이에 깊이를 줍니다. 감정에 빠져서 쓰지 말고, 감정을 관찰하면서 쓰십시오.
묘사와 성찰의 비율을 느끼십시오. 묘사만 있으면 르포가 됩니다. 성찰만 있으면 설교가 됩니다. 장면을 보여주고, 그 장면이 불러일으킨 생각을 풀고, 다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이 리듬이 에세이의 호흡입니다.
4. 퇴고하십시오
초고를 다 썼으면, 하루 이상 묵혀두십시오. 바로 다시 읽으면 고칠 게 안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자기 글이 남의 글처럼 읽힙니다.
퇴고할 때 체크할 것들입니다.
- 없어도 의미가 통하는 문장이 있습니까? → 지우십시오
- 같은 말을 다른 표현으로 반복하고 있습니까? → 하나만 남기십시오
- 수식어가 과한 문장이 있습니까? → 동사 중심으로 다시 쓰십시오
- 첫 문장에서 독자를 잡습니까? → 못 잡으면 첫 문단을 통째로 들어내보십시오
- 마지막 문장이 여운을 남깁니까? → 끝을 너무 깔끔하게 맺으려 하지 마십시오
오웰은 “쓸 수 있는 가장 짧은 단어를 써라”고 했습니다. 에세이에서 화려한 문장은 대부분 군더더기입니다. 잘 쓴 에세이는 읽고 나면 문장이 기억나는 게 아니라, 장면이 기억납니다. 문장이 투명해져야 장면이 보입니다.
좋은 에세이는 뭐가 다를까
예시를 분석해보면, 좋은 에세이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구체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이 있습니다. ‘슬펐다’가 아니라, 슬픔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보여줍니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배경에 들리던 TV 소리 같은 것. 그런 디테일이 보편적 감정보다 더 깊이 파고듭니다.
둘째, 내면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에세이가 시작할 때의 ‘나’와 끝날 때의 ‘나’가 같으면, 읽을 이유가 없습니다. 작더라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했던 걸 조금 이해하게 되거나, 확신했던 것에 균열이 생기거나. 그 움직임이 에세이의 심장입니다.
셋째, 마지막 문장이 열려 있습니다. 좋은 에세이는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대신 여운을 남깁니다. 독자가 덮은 뒤에도 혼자 더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 그게 에세이의 마지막 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추려면 결국 하나로 돌아옵니다. 솔직해야 합니다. 자기를 멋지게 보이려는 순간, 에세이는 힘을 잃습니다. 몽테뉴도 디디온도 라모트도 결국 같은 말을 합니다. 될 수 있는 한 정직하게 쓰십시오. 나머지는 부차적인 테크닉일 뿐입니다.
에세이 한 편에서 에세이집까지
에세이를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권 분량이 모입니다. 보통 에세이집은 20~30편 내외, 200~250쪽 정도입니다.
중요한 건 목차 구성입니다. 에세이집은 단순히 글을 시간순으로 나열한 게 아닙니다. 하나의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에세이집은 3~5개 파트로 나뉘고, 각 파트가 하나의 주제나 시기를 담습니다. 첫 에세이가 독자를 끌어들이고, 마지막 에세이가 책 전체를 착지시킵니다.
출판 경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기성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이 있고, 독립출판으로 직접 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존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출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특히 아마존 출판은 한국어 에세이를 번역해서 전 세계 독자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유통에만 머무는 것과는 다른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에세이 한 편을 쓰는 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시도입니다. 에세이집을 내는 건 그 시도를 세상에 내놓는 일입니다. 첫 문장이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을 쓰는 순간, 이미 시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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