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의 진짜 독자는 한국에 없을 수도 있다
컴퓨터 폴더 안에 에세이가 잠들어 있습니다. 출간한 에세이집에서 꺼낸 것도 있고, 블로그에만 올렸던 것도 있고, 어디에도 보내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성인 절반이 1년에 한 권도 안 읽는 나라에서 에세이집의 운명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초판 찍고, 조용히 절판.
그런데 같은 글이 영어로 번역되어 아마존에 올라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영미권의 독서량은 한국의 5~10배. 그리고 아마존에서는 30페이지짜리 짧은 에세이집도 전자책으로 팔립니다.
에이전트를 구할 필요도, 해외출판사에 투고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존이 무료로 제공하는 셀프출판 시스템 KDP를 쓰면 됩니다.
절차는 네 단계입니다.
원고를 AI로 번역합니다. 이미 대부분의 번역 회사들조차 AI로 초벌번역을 하고 인간 번역가가 감수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AI 번역은 사실상 업계 표준이 되었습니다. 다만 에세이 번역은 일반 번역과 다릅니다. “번역해줘” 한마디로는 에세이의 문체가 살지 않습니다. 독자층, 문체, 톤을 지정하는 프롬프트 설계가 결과물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워드 파일을 전자책으로 변환합니다. 아마존이 무료로 제공하는 Kindle Create라는 프로그램에 워드 파일을 넣으면 목차가 자동 생성되고, 전자책 파일이 만들어집니다.
표지를 만듭니다. 챗GPT에 제목, 저자명, 장르, 사이즈를 지정해서 프롬프트를 넣으면 표지 이미지가 나옵니다. 완성된 파일은 반드시 JPG로 변환해야 합니다. 아마존은 PNG 표지를 받지 않습니다.
아마존 KDP 사이트에 올립니다. 전자책 파일과 표지를 업로드하고, 가격을 정하고, 출판 버튼을 누릅니다. 72시간 안에 전 세계 12개국 아마존 사이트에 나의 에세이가 올라갑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건 뭘까요? 번역도, 파일 변환도, 업로드도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건 “이게 진짜 되는 거야?”라는 의심을 넘는 겁니다. 그 의심만 넘기면, 실제 작업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에세이를 출간했는데 반응이 없었다면, 글이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문제였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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